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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통신원

엘체의 여인에 매혹되다

마드리드 지하철 4호 선의 콜론(Colón)역과 세라노(Serrano)역을 잇는 주변에는 18세기 말, 카를로스 3세에 의해 조성된 과학과 문화의 거리가 있다. 스페인의 대표적 이미지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스페인서는 콜럼버스를 ‘콜론’이라고 한다)의 상이 콜론 광장에 우뚝 솟아 있으며, 그 근방에는 발견의 정원(Jardines del Descubrimiento), 시립 문화 센터, 토레스 데 콜론(Torres de Colón), 국립 고고학 박물관(Museo Arqueológico Nacional) 등이 방문객에게 첫인사를 한다.  



일반 교육 과정을 밟은 한국인에게는 스페인이라는 나라는 이슬람 문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스페인 왕국, 이런 세 가지의 태그로 일반화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요즘은 축구와 플라멩코(flamenco), 투우가 스페인의 이미지를 채우며, 한국과 경제 소득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매우 빈번히 우리와 비교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스페인에 대해 사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물론, 현대는 여느 시대보다 더 지구 반대편의 소소한 작은 일상마저도 관심만 있다면 꿰차듯 술술 알 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슝~ 비행기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렇지만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찬란하고도 훌륭한 이국의 역사라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치 서양인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욱일승천기를 상표로 만들고,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잔인했던 전쟁의 역사를 알고도 그런 반인류적인 표시를 옷에 달고 다닐까? (유럽에 살아보니 먼 아시아의 역사를 잘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국지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전체적이고도 전반적인 역사를 느끼고 알아야만 하리라. 만약 그대가 스페인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면 먼저 마드리드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서 우리는 유물을 통한 스페인의 역사를 볼 수 있으니…...


인류 시대의 유적으로 이루어진 마드리드의 스페인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상당히 흥미롭다. 인류가 출현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보는 역사의 장이 시간과 함께 함축되어 거시적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작게는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흘러가는가, 라는 화두가 마치 이 인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흘러가는가’에 대한 닮은꼴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이 고고학 박물관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생겨난다. 그곳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네안데르탈인이나 호모 사피언스 같은 선사 인류의 뼈부터 볼 수 있다.


나에게는 10년 전, 우연히 보았던 신비로운 여인상 하나가 스페인에 대한 궁금증 하나를 자아냈다. ‘엘체의 부인상(Dama de Elche)’이라고 하는 고대 이베리아 반도의 대표적 석상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발렌시아(Valencia)주 엘체(Elche)에 특별 전시하던 2006년에 그 여인상을 1:1로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석상이 고고학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고 있는 마드리드에 들르게 되었다.


이 여인상은 무엇 때문에 많은 이들을 이토록 끌리게 할까?



엘체의 부인상



얼굴 근접 사진



얼굴 근접 정면 사진


엘체의 부인상은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사이의 제작된 작품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이베리아 반도에 이런 문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랍고도 세심한 표현이 현대의 미적 감각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의 ‘미의 기준’이 그대로 적용될 정도로 이상적인 미인상이다. 어떻게 이 시대에 이런 얼굴이 존재할까?  


현재 받아들여지는 가설은 이 시대 그리스인 조각가나 그리스식 조각을 배운 이가 이 부인상을 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의 휴머니즘 조각상이 인도에까지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상대적으로 가까운 스페인에서 이런 스타일을 발견 못할 리가 없다는 가설은 과히 믿을 만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여인의 기품과 아름다움은 굉장히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이 시대에 근접 못 할 아우라가 느껴지는 인물상이다.

어찌 되었건, 여인의 아름다움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맴돌며 다시 한 번 그녀를 보고 싶게 한다. 요즘 말로, 이 여인에게 매혹, 혹은, 중독되었다고 할까?


마드리드 고고학 박물관의 제19-26실을 천천히 돌아보자. 그곳에는 고대 이베리아 반도의 다양한 출토품이 전시되어 있다. 문헌이 없던 고대 시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출토품이 주는 실마리다. 그 실마리에는 일상에서 쓰이는 도구에서부터 현대에도 뒤지지 않는 화려한 장신구까지 다양하게 그 시대의 양식이 숨어져 있다. 토기에 그려진 어느 누군가의 붓 터치와 풍요를 상징하는 남성의 부풀어 오른 남근, 다쳐 불편한 인체 부위를 치료하고자 하는 기원의 인체 부위별 묘사품 등, 이베리아 반도 고유의 문화와 민간 신앙 등을 느낄 수 있다.


엘체의 부인상은 근대에 발견된 출토품이다. 1897년 스페인의 뜨거운 한여름인 8월에 발견되었다. 엘체의 라 알쿠디아(La Alcudia)의 한 농장 일꾼들이 언덕의 남동쪽 사면을 개간하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쟁기 끝에서 무거운 물체에 부딪혀 나는 소리를 들었다. 농장 일꾼들은 그 물건이 흙에 파묻히지 않도록 벽을 세우며 조심스럽게 파냈다. 그곳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아름다운 여인상이 나왔다. 최초 발견자 14세 소년은 이 여인상에 ‘무어의 여인(이슬람 여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실상 이 여인상은 시대를 훨씬 뛰어넘은 고대 이베리아 시대의 유물이다.



이 조각상이 출토되고도 그곳에는 다른 시대의 많은 유적이 더 나왔다고 한다. 고대 이베리아 시대에서부터 로마, 이슬람, 가톨릭 시대를 거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자.


알게 모르게 여인의 얼굴에는 빛이 살아 있다. 불그스름한 입술과 푸르고 깊은 눈, 색감이 살아 있는 듯한 장신구. 이 여인상이 제작될 당시에는 유리를 녹여 입힌 푸른 눈과 빨간색의 입술, 화려한 장신구와 옷가지 등에 색이 칠해졌다고 한다. 굉장히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조각상 전체가 장식되었다는데 시대가 흐르며 지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 색감이 있는 듯 없는 듯 조각상 부분 부분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 눈에 들어오는 희미한 어떤 색을 느낄 수 있다.  


이 여인상은 아쉽게도 흉상만 출토되었다. 그런데 박물관 내 앞서 전시된 바자의 부인상(Dama de Baza)은 엘체의 부인상이 나머지 부분도 상상 가능할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바자의 부인상은 1971년 그라나다 지역에서 출토되었는데, 같이 나온 유물들이 꽤 인상적이다. 각종 무기와 토기, 그릇 등. 이 시대 여성들이 어느 정도 활약했는지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바자의 부인상과 출토품



엘체의 부인 뒷모습. 구멍이 있는 이유는?


엘체의 부인상도 바자의 부인상과 함께 이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특이하게도 엘체의 부인상 뒷면에는 18cm x 16cm의 원형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석회암 재질의 이 조각상에 왜 그런 구멍이? 의도적으로 유물을 그곳에 같이 넣어 매장했을까? 부인상의 진짜 모델인 시신을 화장하여 그곳에 넣었을까? 신성한 신을 위한 제물을 봉납하던 곳이었을까? 많은 추측이 오간다.


이 아름다운 엘체의 부인상은 많은 다른 유적품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 팔리는 위기 또한 겪기도 했다. 한 때 엘체의 부인상은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 루브르(Louvre) 박물관에 전시되는 비운을 겪는다. 지금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회자하지만, 그 당시의 모습을 그려 보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다.


엘체의 부인상이 출토되고 난 2주 후, 아직 그 가치가 매겨지기도 전에 프랑스로 팔려나간다. 그 당시 돈 20유로(물론, 지금 현재의 가치로 매기면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다.)에 팔렸다고  하는데 당시 발견된 곳은 개인 사유지였으며, 국가 문화재 보호법이 없었던 때라 사람들은 아주 당연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 소유의 유물은 돈으로 팔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엘체의 부인상은 44년이라는 시간을 고국을 벗어나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낸다. 그러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나치의 침략으로 고통을 받던 프랑스 정부는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작품 몇 점을 스페인 정부와 교환하면서 이 엘체의 부인상을 귀환하게 된다. 그렇게 이 조각상은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다 마침내 1971년부터는 마드리드의 고고학 박물관에 영구 전시되었다.  2006년에는 이 조각상이 출토된 엘체에 전시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한 산등성 언덕에서 아무 실마리도 없는 역사의 유물이 나왔다. 신비로운 얼굴과 사실적인 표현이 마치 살아 있는 미인을 앞에 두는 듯, 우리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고대 이베리아 반도의 문화와 역사가 이 여인의 모습에서 비치는 듯, 하나하나 미끼를 잡고 역사 속에 뛰어들어 보자. 여인은 귀한 집 고관의 여인이었을까? 그 시대의 집권자였을까? 하나의 이상적인 공주상이었을까? 여인은 제단을 운영하는 신성한 성인이었을까? 많은 추측이 가능하다. 아직 증명할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대 이베리아의 사실적인 삶을 추측할 수 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로마, 이슬람, 가톨릭 시대 말고, 바로 순수한 이베리아 고유의 문화를 말이다. 다양한 토기와 그 토기 문양을 위해 새겨진 손놀림과 순수 작업, 하물며 인간의 틀니까지……

나는 마드리드의 스페인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많은 감상에 젖었다.


여인이 주는 매력은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한 시대에 다가가기 위한 동기를 부여한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했던 스페인이 이제 더 가깝게 다가온다. 엘체의 부인상과 2500년이라는 시간의 틀에서 어떤 우주적 교류가 느껴진다. 나는 지구인이다. 지구인의 이 유물을 사랑하리라~! 란 마음이 인다.



그대가 마드리드를 방황하게 된다면 한 번쯤 여인을 방문하라고 이르고 싶다.

마드리드에 있는 스페인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아침 9시 30분에서 저녁 8시까지 문을 열며, 일요일 및 공휴일은 아침 9시 30분에서 오후 3시까지 문을 연다. 매주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다양한 스페인의 문화를 한 눈에 보고 싶다면 고고학 박물관으로 고(Go)~!



2016년 7월 월간 [태백]의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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