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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댁의 시골살이

비 오는 날, 아빠가 가져온 죽은 새

뮤즈 산들무지개 2016.09.04 01:10

해발 1,200m 스페인 비스타베야 고산의 여름 날씨는 아주 변덕이 심하다. 오전에는 쨍쨍하도록 푸르고 높은 전형적인 고산의 날씨가 오후만 되면 구름이 끼고 천둥, 번개 심지어 우박까지 동원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로 변하고 만다. 덕분에 비가 내려 말라가는 대지에 적당한 기쁨을 선사하지만, 우박이라도 맞게 되는 날에는 올해 농사는 끝장이 되고 만다. 또 아이러니하게 트러플(truffle, 서양 송로버섯)을 키우는 농사꾼에게는 이 천둥과 번개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아주 반가운 존재다. 트러플이 성장하는데 이런 전기장의 반응이 꽤 영향이 있다고 믿으니 말이다. 실제로 천둥 번개가 있는 해에는 트러플 농사도 풍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제일 심하게 받는 사람은 양치기다. 멀쩡하고도 평화로운 오전 날씨에 아무 방비 없이 양 떼를 풀어놓았다가 벼락 맞아 죽어 나가는 양도 생기니 말이다. 그것이 두려워 아마도 스페인 시골에서는 아직도 사람들은  여름 번개를 피하고자 산 조안(San Joan)의 날에 이른 새벽 정화수와 양 치즈, 그리고 와인 세 잔을 마시는가 보다.   


그렇게 여름에는 또 한 번의 고난이 우릴 기다린다. 이런 날씨에 인터넷을 하기란 정말 줄타기 같은 곡예다. 삼사일이 멀다 하고 천둥-번개로 인터넷 안테나가 박살 나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우리는 또 한 번 문명의 외곽에서 고립되고 만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온 가족이 집 안에 모여 옛날이야기를 하거나 부침개라도 구워 먹어야 그 고립감을 이길 수 있다. 아니면 번개와 천둥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숫자를 세면서 그 거리를 상상하기도 한다. 굉음이 들릴 때는 정말 무섭다. 남편이 늦게 오는 날에는 나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쏟아지는 천둥소리와 갈라지는 번개 빛, 폭우, 우박 등이 압박하여 집안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는 어디일까 고심하며 아이들과 두려움에 떨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우린 언제나 부엌에 딸려있는 다락방으로 간다. 다락이 그래도 안전하지 않을까?



그날도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있었다. 다락방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평야에는 물이 고인 듯 빗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지붕에는 양동이로 물을 쏟아붓는 듯 육중한 소리가 났고,  나뭇잎에 탁탁 부딪히는 물방울이 홍수를 이루듯 창밖으로 전해졌다.


"아! 엄청나게 비가 많이 내리는구나, 아빠는 괜찮을까?" 혼잣말의 걱정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속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비 오는 것이 신나 그런지, 창밖을 보면서 평야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비에 즐거워하기만 한다.

아침에 텃밭에 갔다 온다던 남편이 한참이 꽤 지나 나타났다. 뭘 하다 그렇게 늦었지?


그날따라 남편은 손에 무엇인가를 감싼 듯 파란 수건을 들고 성급하게 들어왔다.

"오다가 도로변에서 죽은 새를 발견했어!"

이 소리가 마법이라도 되는 듯, 아이들은 "아! 불쌍해~!" 소리를 내면서 아빠 곁으로 다가가 파란 수건에 감싸인 죽은 새에 관심을 보였다.

"내가 처음 봤을 때는 살아있었는데, 오면서 죽었나 봐."

"아빠, 왜 죽었는데?"

"그건 잘 모르겠는데, 비가 갑자기 내려서 앞을 잘 못 봐서 어떤 장애물에 부딪혀서 죽은 것 같아. 지나가는 차에 부딪혔을지도 몰라."

"정말 불쌍하다. 그런데 왜 가져왔어?"

일부러 죽은 새까지 가져오다니?! 남편의 특별한 철학관을 알고 있어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일부러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소릴 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우리가 '진짜'인 '새'를 관찰할 수 있겠어?"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현재를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익숙해야 하고, 가장 이 순간을 타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티베트 사람들은 '죽음'을 언제나 생각하면서 그 순간을 살아간다고 한다. 죽음 저편의 세상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현재의 삶을 더 충실히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 주변의 동물에게서 그 죽음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배우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남편은 아이들이 죽은 동물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싶어 한다.


"죽음이란 자연스러운 거야."


아이들이 아빠를 닮아 줘 참 다행이다.



지난번에는 죽은 생쥐를 보고 한참을 연구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평소 동물을 관찰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은 이런 기회로 자세히 관찰하고, 몸체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특징을 살펴볼 수 있으니 나름대로 자연적인 교육도 된다.

"우리가 이 동물을 잘 관찰할 수 있도록 기회가 생긴 거야~. 이 새는 참 예쁜 녹색, 노란색 깃털을 가지고 있어."

아빠의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호기심 때문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만져봐도 돼?"

서로 만져보고 관찰하겠다니 저 어린 세 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새는 긴 부리를 가지고 있고, 이 새는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어. 짧은 다리를 가진 이유는 긴 이동을 해야 하는 철새이기 때문이야. 땅에 자주 내려와 앉질 않고 오래 날아야 하기 때문이지."

아빠의 설명과 함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다.

"이 새 이름이 뭔지 알아?"

"몰라."

"이 새는 아베하루코 (abejaruco, Marops apiaster 유럽벌잡이새)라는 새야.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새는 벌을 잡아먹는 새야. 말벌을 특히 잘 잡아먹어서 벌잡이새라는 이름이 붙은 거야. 그래서 부리도 길지."

"날개를 펼쳐보자. 날개가 참 길고 예쁘지?"

남편은 아주 능숙한 손놀림으로 죽은 새의 날개를 펼쳤다. 길이가 25cm가 넘는 것 같다. 우리는 남편 덕분에 새를 직접 보고 관찰하는 시간이 꽤 흥미롭고 즐거웠다. 


  


부리는 검고, 깃털은 초록색에서 노란색, 불그스름한 색까지 참 아름다운 유럽벌잡이새, 서식은 남부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에서 하는 반철새라고 하는데 어쩌다 이렇게 폭우 때문에 죽어버리고 말았을까? 자연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도 두려워하는 존재임이 분명하구나.


남편이 죽은 동물을 그냥 두지 않고 매번 집으로 가져온다. 아이들에게 직접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그래야, 우리는 자연스러운 자연의 일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보면 섬뜩하기도 한 교육 방법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한다면 자연 안에서 배울 수 있는 우리만의 혜택은 아닌가 싶다. 비 오는 날, 우리 가족은 이렇게 또,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일부인 동물을 배우는 기회를 얻는다.


격월간지 [내고향] 2016년 6-7월 호


4 Comments
  • 프로필사진 엄영희 2016.09.04 02:44 신고 산똘님의 자연교육 정말 훌륭합니다~!
    자연의 생성과 죽음등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찰하게 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에 대한 소중함을 어릴때부터 경험하고 스스로 느끼게 하는 교육은 정말 감동입니다~^^ 자연을 알고 소중함을 지키는 참나무집 가족 같은 분들이 이세상에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프로필사진 뮤즈 산들무지개 2016.09.04 19:28 신고 이게 과거에 다 하던 교육방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덕분에 저도 이 방법이 참 마음에 들게 되었지요.
    아이들도 커서 이런 교육 방법대로 자연과 교감하고 살았으면 하네요.
  • 프로필사진 serena 2016.09.04 04:26 신고 남편분이 참 현명하시고 세심하신거 같아요. 정말 죽은새를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한마디한마디 해줄때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교육이 되어질것이고 이게 정말 산교육이죠. 살아있는교육 !!사실 날아다니는 새를 책에서만 보지 자세히 볼 기회가 없는데 참나무집 공주님들은 지혜로운 아빠를 만나서 행운인거 같아요. 어릴때 자연을 접하고 흙냄새 풀냄새 . 자연을 배울수 있도록 도시생활을 접고 아이들을 위해 고산지대에서 터를 잡아 자연속에서 마음껏 자랄수 있게 하는 경험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고 아이들에게는 평생 가지고 갈 추억이자 교육이니까요.
    산들님이 전해주시는 소소한 이야기속에 느끼는 바가 많아요.
    사진속에 새가 참 곱네요. 여러가지 색를 가지고 있고 자세히 보게 되네요 .

    아. 산들님. 혹시 새로 오픈한 블로그 뮤즈방에 게시글 알림받기 즉 새게시글 바로 "소식받기"어떻게 하면 되죠?? 이 블로그는 링크를 카카오스토리로 연결해서 소식받기로 됐었던거 같은데...제가 컴맹이라 자동알림그런게 어디있는지 모르겠네요. ㅠㅠㅠㅠ
  • 프로필사진 뮤즈 산들무지개 2016.09.04 19:30 신고 세레나 님. ^^
    저도 블로그 뮤즈방 게시글 알림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의문이랍니다. 아마 카카오스토리 채널의 소식 알림을 받고 계시다면 제가 포스팅 올릴 때마다 게시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카스채널로 받아보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물론, 어떤 개인적인 글은 그냥 알림 없이 올리도록 할게요. 이거 비밀인데 알려드려요~! ^^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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