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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댁의 시골살이

스페인 시골 할머니의 민주주의

뮤즈 산들무지개 2016.11.20 22:19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침 일찍 텃밭에 들렸다. 나는 조용한 대지와 햇살을 받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명상하듯 풀을 뽑고 채소를 수확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떤 정화의 작용이 내 마음 안에서 인다. 그런 순간의 여유가 좋다. 그런데 어떤 날은 온 비스타베야가 떠나갈 정도로 쩌렁쩌렁하고 괄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아! 반갑기보다는 걱정이 먼저 다. 


‘또 마리아 할머니야?’


마리아 할머니도 폰타날에 텃밭을 가지고 있다. 우리 밭 밑에 있는 밭인데, 언제나 내가 무슨 일이라도 하면, 시어머니처럼 참견하면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충고한다.


“여긴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긴 저렇게 하면 안 돼!”


매번 이런 식이다. 그래도 무언가 배울 수 있어 참 좋긴 하다. 문제는 배우는 데에만 그치면 다행인데 마리아 할머니는 언제나 내 밭의 일까지 같이 가져오신다. 예를 들면 토마토 모종을 잔뜩 들고 와 나에게 주면서 밭에 심으란다. 많은 양의 토마토 모종을 심지 않을 것이라고 계획해도 어쩔 수 없이 모종이 아까워 나는 나중에 그 모종을 다 받아 밭에 심게 된다. 그런 식으로 매번 일을 주신다. 그래서 가끔, 나는 멀리서 할머니가 계신가, 안 계시는가 눈치를 보다 가곤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폰타날에 밭을 가지고 있는 다른 이웃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어쩐지 마리아 할머니의 눈치를 많이들 살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은연중에 이 마리아 할머니를 우리의 왕대장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왕대장? 나보고 왕대장이라고?”


왕대장이라는 말을 듣기라고 하면 마리아 할머니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화를 내신다. 


“난 민주적인 사람이야. 누가 나보고 독재자처럼 왕대장이래?”


'왕대장'을 스페인어로 하자면 '헤파(jefa)'로 가끔 명령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쓰여 기분이 상할 수도 있다. 한국 같았으면 당연히 어르신을 우대하여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는 이런 비민주주의적인 단어는 사람 비위를 상하게 하나 보다. 노인이라고 다 명령을 내리지 않고, ‘어른이 말하는데 어딜 감히?!!’가 아니라, ‘내 말을 좀 들어봐! 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해?’가 한국과 참 다르다. 이곳의 노인들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생각을 나누며 소통한다. 


 



비스타베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라 노인층들이 주요 인구 층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부고할 때마다 동네 이웃들은 그런다. 


"아! 도서관 한 채를 또 잃었구나!"


도서관? 그만큼 노인들의 지혜에 주민들은 많이 의존해왔다. 스페인 사람들의 노인 공경은 참, 나에겐 새롭다. 휴머니즘 차원의 인간 존중이라고 말할까? 늙음과 젊음을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느낌이다. 마리아 할머니 같은 경우는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자신이 하고 다니는 패션, 자기 일 등을 친구처럼 나에게 풀어놓을 때, 난 속으로 깜짝 놀란다. 여든여섯의 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취미가 있고, 취향이 있다는 것이 어색하니 말이다. 노인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 알게 모르게 내 무의식에 흐르고 있었으니, 마리아 할머니의 대화는 가끔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렇듯 이곳 노인들은 젊은이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입담을 가지고 있다. 


"있잖아, 누가 그러는데......, 어디에서 들은 말인데......, " 하고 대화의 서두를 시작하는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꼭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로 겸손함을 표현하니 듣는 이가 편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이웃들은 노인에게 귀 기울일 줄 알고, 그 가치를 도서관 한 채라고 표현한다. 


마리아 할머니는 작은 양떼를 모는 양치기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매일 몸을 놀려 여든여섯의 그 나이에도 꼿꼿하게 평야의 위아래를 오가며 양을 몬다. 저런 활력이 어디에서 넘쳐 날까? 


“난 아파트에 가 살면 심심해서 죽을 거야.”


가끔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할아버지와 단출히 두 분이 오래된 농가에 사시는데, 농가는 말 그대로 유지할 일이 태산같이 많아 할머니는 바쁘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6년 전, 우리가 처음으로 폰타날 밭에 감자를 심던 때였다. 그날도 마리아 할머니를 피해 우리 부부는 열심히 감자를 심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디선가 재빠르게 양떼를 몰고 와, 큰 소리로 “내가 좀 도와줄까?” 하시며 우리 밭으로 들어오셨다. 


“감자는 그렇게 심는 게 아니야. 내가 쉽게 심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그 작은 체구로 날렵하게, 마치 몸속에 백 년 묵은 여우가 들어있는 듯, 마리아 할머니는 스페인식 손잡이가 긴 호미로 고랑을 팠다. 그 속에 감자를 하나씩 던져넣고 흙을 양쪽에서 덮었다. 할머니는 이곳은 물을 댈 수 있어서 흙을 단단하게 다지지 않아도 된다며 스펀지처럼 숨을 쉬도록 그렇게 흙을 덮었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가 흙을 덮기로 하고 남편은 구멍을 파고 감자를 넣기로 했다. 남편의 손놀림이 느려지자 할머니는 궁덩이에 바짝 붙으면서 아이고, 더 빨리! 고함을 지르곤 했다. 아! 날렵하다고 소문난 남편이 할머니를 이길 수 없다니…..! 그런 만큼 이 시골할머니는 시골생활이 당신의 삶 그 자체였다. 산똘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엉덩이에 불이 난 사람처럼 할머니를 피해 감자를 넣었고, 할머니는 그날 뛰어난 몸놀림으로 우리를 한 수 가르쳐주셨다. 

이런 할머니도 작년부터인가 더 많이 늙으신 듯하다. 


부군께서 거동할 수 없으니 이제는 집안에만 계신 듯하다. 가끔 바람 쐴 겸 양떼를 몰고 산책을 나오시지만 어쩐지 옛날 같지는 않다. 그래도 그 유쾌한 목소리는 어딜 가지 않는다. 


“그래도 말이야! 내가 처녀 적에는 집집이 다니면서 기타 치며 춤을 추곤 했어. 축제 때 말이야.”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기에 충분히 날 깨웠다. 


1965년 비스타베야(Vistabella)


“그런데 이 양반이 건강해야 할 텐데 말이야.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이 양반 죽고, 도시 사는 딸이 날 데리러 오는 거야.”


죽어도 도시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 얼굴이 안쓰러웠다. 나도 이제 비스타베야의 살아있는 도서관에게 문의 좀 해야겠다. 할머니, 염소 젖으로 치즈 만드는 법 좀 가르쳐주세요, 하고 말이다.



[내고향] 2016년 연재 글




9 Comments
  • 프로필사진 프라우지니 2016.11.21 05:01 신고 할일이 있다는것이 젊게 사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요양원은 70대이신대로 죽은날 받아놓은 환자처럼 사시는 분들뿐입니다.^^;
  • 프로필사진 Yeshuu 2016.11.21 05:52 신고 노년의 삶
    지식의 축적 도서관
    정겨운 시골풍경이보입니다
  • 프로필사진 키드 2016.11.21 06:31 신고 국적을 떠나 어르신들 생각은 비슷한듯해요
    살아온 경험이야 말로 대단한 지식이지요.
    마리아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 프로필사진 나무 2016.11.21 09:42 신고 할머니가 참 건강해 보이세요.
    스페인의 도심생활만 접하다가, 시골살이의 수박한 일상들을 들여다보니 너무 좋아요.
    감자를 심고 텃밭 가꾸는 모습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구요. 잘보고 갑니다.
  • 프로필사진 힐링커피공방 2016.11.21 12:14 신고 한국 할머니와 스페인 할머니는 같은 분들 같아요.
    저도 텃밭을 만들어 동네 할머니들께 여쭤보니 마늘을 심으라고 하셔서 심었어요. 항상 정을 나눠주시는 할머니는 국경을 초월하는것 같습니다.
    저도 텃밭에 나가봐야겠어요. 오늘도 감사한 글나눔 감사합니다.
  • 프로필사진 조수경 2016.11.21 14:41 신고 산들님, 안녕하시죠??^^
    '도서관 한 채' 란 말이 각인되어 뇌리에 박히네요.
    이웃의 좋은 어르신들은 젊은이들 하는 일은 탐탁치않아 그렇게 손수 일러주시네요.
    저 또한 여러번 도움을 받은 터라
    더욱 맘이 따뜻해집니다.
    미래에 우리 모습이 되기도 하겠죠~!!
    건강 조심 하세요♡

  • 프로필사진 박경애 2016.11.21 20:34 신고 멋진글 잘보고 있어요.
    3월에 스폐인여행에서
    생각나서 가이드님께 말했어요.
    그랬더니 스폐인 남성과 한국여성의 조합이 최상이라고 하더라구요.
    행복한 미소가 지어지는 삶이 참좋아요.
    감사드려요.
    화이팅입니다.
  • 프로필사진 세레나 2016.11.21 21:12 신고 국적초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연에서 살고 싶어하시는건 같네요.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살았을때 옆집 할머니께서 잠시 딸네 집에 와서 머무셨었는데 저를 볼때마다 " 아파트에 살기 싫어. 창살없는 감옥같아. 그리고 이 많은 땅을 그냥 놀리면 어떻게해. 아까워 죽겠네. 뭐라도 심을 생각을 해야지. " 하며 지나가는곳마다 공터가 보이면 뭐라도 심고 싶다고 하셨던게 기억나요. 마리아 할머니의 주름에서 왠지 모를 친근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네요. 산들 작가님께서 대신 전해 주셔요! 마리아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라고요!
  • 프로필사진 허애란 2017.08.09 16:15 신고 멋지게 스페인을 소개해 주시니(어른 공경,가족간의 화목함,스페인과일 채소,스페인자연 등등 ) 스페인정부는 산들님께
    훈장 주셔야 됩니당~~~^^
    죽기전에 꼭가봐야 될곳 인듯이요,,,
    행복하세요 산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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