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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통신원

마징가 Z 나올 듯한 "예술과 과학의 도시"

돔의 천장이 양쪽으로 쩍 갈라진다. 거대한 로봇 마징가Z가 웅장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푸른 하늘이 로봇이 뿜어내는 불꽃으로 하얀 선을 담는다. 거대한 로봇의 두 팔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적에 용감히 맞서자!”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만화 영화 시리즈의 한 장면이 쉽게 연상되는 곳이 있다. 이곳은 만화도 아니고, 공상 과학 영화 세트장도 아닌, 스페인의 제삼도시인 발렌시아의 한 장소이다. 예술과 과학의 도시(Ciudad de las artes y las ciencias)라고 칭하는 유럽에서 떠오르는 관광 명소이다. 스페인 하면 어쩐지 중세와 근대 건축물이 주요 풍경을 이룰 것 같은데 어찌, 이곳은 현대를 벗어난 최첨단의 느낌이 든다. 마치 우주 시대를 앞당겨 놓은 듯 기괴하고도 형이상학적인 건축물들이 마징가Z가 그대로 재현되어 나올 듯하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다. 어쩌면 우주 시대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아닐까?


발렌시아(Valencia)는 발렌티아(Valenti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여성명사로 “건장, 체력, 근력, 기력, 용기, 능력, 재능”이라는 뜻이 있는데 어째서 이런 단어가 지역명으로 쓰였는지는 모르겠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해 상업 도시로 큰 활약을 하면서 생겨난 이름이 아닐까 글쓴이는 짐작하지만, 고대 이베리아 시대부터 존재했던 2천 년 이상 된 도시이니만큼 이런 짐작은 허무할 뿐이다, 이름이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으니까.


고대 이베리아와 로마 시대, 서고트족의 침범과 이슬람 시대 그리고 가톨릭 시대를 거치면서 발렌시아는 많은 유적을 품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가 이동하며 오갔으니 발렌시아 구시가지 골목 하나하나는 유적이 쌓인 역사적 기록이다. 그런 역사 속에서 뚱하게 탄생한 것이 우주 시대를 위한 유적일까? 바로 “예술과 과학의 도시”이다.



    

“예술과 과학의 도시” 탄생 배경에는 발렌시아를 휩쓸고 간 역사적인 자연의 대홍수가 있다.

1957년 10월 14일에 내린 폭우는 시내를 관통하는 투리아강(río turia)을 범람해 큰 피해와 사상자를 냈다. 지중해성 기후는 보통의 건조하고 따뜻한 기후를 보인다. 쨍쨍하고 따가울 정도로 무서운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 건조하면서도 적은 강수량, 온화하면서도 따뜻한 겨울 날씨, 북유럽인들이 사랑하는 300일 이상의 맑은 날씨가 이곳 지중해에서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한 번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수마에 모든 것이 떠내려갈 정도로 참담하며 강력하다. 1957년에 내린 비는 이례적으로도 찾아볼 수 없는 큰 재해를 불러일으켰기에 많은 이들은 역사로 기억한다.


“강 근처에는 집을 짓지 마라.”


이 속담은 지중해성 기후를 대변하는 문구일 것이다. 배산임수를 했다가 10년 이상 멀쩡하다가도 한 번 내리는 폭우로 모든 것을 잃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스페인 마을은 강과 평야보다는 산 위로, 더 위로, 꼭대기로 올라가 생겨난 것은 아닐까? 물론, 역사적 배경으로 따지자면 성주의 보호를 받기 위해 산꼭대기의 성 마을에 집을 지어냈지만 말이다. 그래도 자연적 배경을 따져본다면 강이나 하천 근처에 집을 짓는 일보다는 산 위에 집 짓는 일이 더 안전하다.


1957년 10월 15일 발렌시아 투리아 강의 대홍수 모습



1957년의 대홍수 후, 자연의 거대함 앞에 망가진 인간이 생각해낸 자연재해 해결법은 “물길 바꾸기”였다. 물길을 다른 곳으로 바꾸어 미리 대홍수에 대비하자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렇게 투리아(Rio Turia)강의 운명은 상상을 초월할 결과를 맞게 된다.

   

투리아강이 다른 곳으로 물길이 옮겨지는 사이, 비어있는 투리아강은 어떻게 변했을까?

새로운 물길을 트는 동안 도시를 관통하는 이 강은 공원으로 서서히 탈바꿈한다. 물론 이 공원 조성에는 발렌시아 시민들의 결정적인 공헌이 뒷받침한다. 발렌시아 시의회와 스페인 정부는 투리아강에 공항과 항구를 이을 고속도로와 도시 내부 교통을 장축할 목적으로 건설을 계획했다. 그런데 이곳이 어디인가? 바로 강이 아니던가. 아무리 비어있는 강이라고 할지라도 도시를 관통하는 고속도로와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은 시민들에겐 도시의 숨 막히는 공간 안에 새로운 건축물을 증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민이 내건 슬로건은 다음과 같았다.


“강은 시민의 것이다. 우리는 그 강을 푸르게 하고 싶다.”



사진: pixabay


마침내 시민의 염원으로 1986년 9Km에 달하는 이 강은 푸른 투리아 정원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지금은 스페인 내 가장 큰 정원 중의 하나이며, 방문객이 가장 많은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투리아강 아니, 투리아 정원 내부에는 다양한 시민을 위한 레저 스포츠 문화 시설이 들어서는데 비오 파크(Bio Parc, 생태조성공원)에서부터 야외 축구장, 러닝 트랙, 산책로, 어린이를 위한 걸리버(거대한 걸리버 모형에 미끄럼틀과 사다리를 놓고 오르내리는 어린이 놀이터이다.) 공원까지 발렌시아 시민의 여가와 레저를 위한 시설이 많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징가Z가 돔을 열고 나올) 예술과 과학의 도시가 강 하구에 조성된다.

도심을 관통하는 옛 강을 정원으로 만들고 이제는 발렌시아를 상징하는 예술과 과학의 도시로 한번 들어가 보자.


'예술과 과학의 도시'는 여러 건물이 하나의 집합체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은 건물마다 독특한 개성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종합 센터이다. 건축학도들이 열광하는 발렌시아의 이 건축물들은 세계적 건축 디자이너 산티아고 갈라트라바(Santiago Galatrava)와 펠릭스 칸델라(Felix Candela)의 풍부한 재능으로 그 숨길이 불어넣어 졌다.  


대표적 건물을 여기서 간략하게 나열해보자면, 먼저 과학박물관(Museo de las ciencias)이 있다. 옅은 색의 파란 물이 옥빛으로 물들고, 상어 뼈를 모티브로 삼은 기둥이 상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이곳이 과연 현실 세계인지, SF 영화 속의 한 장면인지 마치 달리의 초현실주의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인공 호수가 잔잔하게 길을 연다.



이 건물은 흥미로운 과학의 세계를 알기 쉽게 관찰할 수 있도록 여러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체험과 실험적 도구들을 이용하여 배우기도 하고, 다양한 테마로 접근할 수 있다. 우주학에서부터 물리학에 접목하는 과학적 가치와 함께 이곳은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다음으로는 에미스페릭(Hemisferic)으로 3D 가상세계를 현실로 만나볼 수 있는 아이맥스(IMAX) 돔이다. 이 돔에서 마징가Z가 나오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할 듯하지만, 실제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미래와 로봇, 공상과 과학이 어우러지는 게 느껴진다. 또한, 이곳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우주 프로젝트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돔에 우주 프로젝션을 쏘면 우리 머리 위 우주를 한눈에 관찰하는 자연적인 공부의 장도 된다. 시각적 요소를 강조하는 이 건물의 모티브는 눈(eye)이라는데, 그 의도와 기능이 참 잘 들어맞는다. 우리 눈으로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에 대한 시각적 장소이니 건물과 철학이 딱 들어맞는 것이다.



다음은 유럽 최대의 아쿠아리움이 있는 오세아노그라픽(Oceanografic)으로 가보자. 이 오세아노그라픽은 50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종의 해양 생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오대양, 남극, 북극, 수심이 깊은 해저의 생태계 등을 그대로 가져온 듯 아쿠아리움마다 거대한 수조로 이루어져 있다. 굉장히 가깝게 바다 생물을 구경하는 점에서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모든 바다를 품을 수 없는 환경적 제약으로 생태보호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가령 멸종 위기에 있는 벨루가(Beluga, 흰돌고래)가 정신이상으로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에 시민들은 청원 운동까지도 했다. 그러나 풀어주자는 청원에도 불구하고 좁은 수조 안에 갇혀 있으니 이 도시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연과 인류 과학을 품기 위해 동물을 인공적으로 가둬 보호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자고 시민은 많은 의견을 속출하고 있다.




다음 건물은 돔의 지붕이 막 열릴 듯한, 막 마징가Z가 나올 듯한 건물이다. 외관과는 다르게 이 건물은 음악 예술과 관련된 건물이다. 팔라우 데 레스 아르츠 레이나 소피아(Palau de les arts Reina Sofia) 건물로 오페라 하우스다. 이곳은 아방가르드적 공간에 대응하는 이미지를 채택, 현대적이면서도 최신 기술을 접목한 세계를 보여준다. '동적인 문화'라는 주체적 이미지를 앞세워 발렌시아 음악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징검다리로 그 중심에 서고자 하는 발렌시아의 염원이 담긴 듯하다.


안타깝게도 이 건물은 개관 이래 내외적인 잦은 건축적 문제로 시민들의 핀잔을 받기도 했다. 지반이 약한 강에 건물을 지은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말이다. 잦은 보수에도 많은 공연과 행사가 이루어져 문화적 소망에 대응하는 열정파에게는 참 좋은 공간이다. 또한, 미래가 유망한 한국인 음악가들도 종종 볼 수 있어 이곳에 사는 한국인으로 자긍심이 일기도 하다.



다음은 미래형 정원을 엿볼 수 있는 움브라클레(Umbracle)를 소개한다. 이곳은 총면적 1만7천5백 m2의 전시 면적을 자랑하며 계절에 따라 변하는 다양한 발렌시아의 식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야자수 및 지중해 연안에 자라는 허브 등을 정원으로 꾸민 정원 내 파세오 델 아르떼(Paseo del arte, 예술 산책로) 산책로에는 흥미로운 현대 조형물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고라(Agora) 건물을 둘러보자. 이곳은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로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할 기능성 건물이다. 그래서 일반 방문객은 안을 들여다보기가 힘들다. 의회, 컨벤션, 콘서트 등 다양한 다기능 시나리오가 가능한 공간이다.

이렇게 여섯 곳을 소개하다 보니, 이곳이 인간과 동물, 자연의 간략한 축소판은 아닌가 싶다. 마치 우주 시대, 다른 종족이 인간을 찾을 때 대표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소개) 역할을 할 듯한......



대략 1.8km, 40만㎢ 정도의 대규모 공간에 달하는 이 "예술과 과학의 도시" 지구에는 다양한 이벤트와 전시, 행사, 공연 등이 진행되고 있으며 건축물의 혁신적인 디자인은 미래 시대를 직관적으로 보여줘 방문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건축물 곳곳에 트랜카디스(trencadís, 스페인 근대 모더니즘 장식 양식으로 타일을 깨 모자이크로 장식하는 기법을 말한다. 대표적 작품에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 장식이 있다) 형태의 스페인 근대 데코 법이 보이며, 스페인을 상징하는 푸른 지중해와 하얀 벽 등 풍부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이 건물들은 스페인 내에서도 도시 이미지를 가장 혁신적이고도 '세련되게' 변신시킨 건물로 뽑고 있다.  



풍부한 문화유산의 유물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자란 스페인 사람들의 상상력이 총 가미되어 멋진 미래 유산으로 지어진 이 공간이 새삼 부럽다. 우주 시대의 항해를 상징할 정도로 예술과 과학의 총집합체가 인간이 만든 핵심적인 문화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콜럼버스가 대항해 시대 신항로를 개척한 것처럼, 이 혁신적인 공간이 어쩌면 우주 시대의 모습을 개척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당신이 만약 스페인을 방랑(여행)하고 있다면, 우주 시대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발렌시아의 "예술과 과학의 도시"에 한 번 방문하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 유년기의 동심을 일깨우며 공상 과학의 세계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공식 웹페이지는 www.cac.es이며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발렌시아? 어쩌면 마징가Z 기지가 그곳에 비밀리에 있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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